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러시아계 중국인 (문단 편집) == 중국의 러시아계 타타르인 == [[파일:ED248C34-F41D-429E-90CD-00D936A8F542.jpg]]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이주해온 백인계 [[타타르]]인들(특히 [[볼가 타타르]]인)의 후손들.[* 명, 청 때는 타타르라는 말이 오랑캐 비슷한 늬앙스의 비하명칭에 가까웠으나, 러시아에서 이주해온 타타르인들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비하적 의미가 옅어졌다.] 일반적인 러시아계 중국인 및 알바진인과 다르게 [[이슬람]]교를 믿기 때문에 종교적으로는 [[우즈베크인]]이나 [[위구르]]족 같은 중국의 다른 무슬림 민족들과 가깝다. 물론 말 그대로 러시아에서 이주해왔기 때문에 신장 지역에 거주하던 다른 무슬림 민족들에 비해 교육 수준이 높은 경우가 많았고, 이들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이슬람 모더니즘]] 성향의 학교를 운영하면서 [[이슬람 모더니즘#s-2.1|위구르, 카자흐족들의 민족주의 발전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들의 영향으로 오늘날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비교적 소득 수준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수준은 오히려 평균보다 더 높은 편이다. 보통 중국 내에서 인구 수가 얼마 되지 않는 소수민족들이 미분류민족으로 대충 처리되는 것과 반대로 인구 수가 얼마 되지 않음에도 독자적인 소수민족으로 분류되었다. 러시아계 중국인들이 같은 러시아인끼리 결혼하는 경우보다는 중국 내 다른 민족들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중국 내 러시아계 타타르인들도 [[위구르]]인, [[카자흐]]인, [[후이족]] 등 중화인민공화국 내 무슬림 민족들하고 통혼하는 경우가 많으며 일부는 아예 [[한족]], [[몽골인|몽골족]], [[만주족]] 등 비무슬림 민족과 통혼하기도 한다. 1930~40년대부터 60년대 찍힌 타타르인 사진들은 백인 외양이 좀 더 강하다면 세대가 지날수록 사진에 나온 것처럼 외양이 [[유라시안]] 민족인 [[우즈베크]]인, 위구르인, [[투르크멘]]인과 흡사해진다. 아예 일반적인 중국인과 전혀 차이없는 외모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중국의 러시아계 타타르인 중 대표적인 인물로는 [[부르한 샤히디]]가 있다. 신장성 이외에 만주 하얼빈에서도 타타르족들은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 동방 철도를 경비하기 위해 파견한 타타르 군인들을 위해 하얼빈에 모스크가 건설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더 많은 타타르 무슬림들이 하얼빈으로 들어왔다. 한 때 하얼빈의 타타르인들은 타타르어로 된 신문을 인쇄하고 학교를 열고 금요일 합동 예배를 근행하기도 하였다. 하얼빈의 타타르족들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점차 하얼빈을 떠나 다른 지역 혹은 다른 나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고, 타타르인들이 남기고 떠난 모스크는 공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임대되었다. 오늘날 하얼빈에 남은 타타르인 인구는 노인 몇 명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https://www.sixthtone.com/news/1000918/the-fast-fading-memories-of-harbins-migrant-history|#]]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